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있는 것

  저는 현재 한 회사에서 수출과 수입에 관련된 전산 시스템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오라클 ERP 시스템을 도입하여 사용중입니다. 국내 ERP 시스템의 대표적은 공급자로서 SAP와 오라클이라는 패키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 다 Global Standard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 내의 수입과 수출에 관련된 다양한 무역 프로세스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ERP를 도입한 많은 기업들이 여러 Third Party에서 제공하는 OM, PO, AP, AR의 Interface를 활용한 수출입 시스템을 Add On시켜 사용중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의 오라클 ERP를 사용한 업무를 하지만 엄밀히 따져 오라클 Standard ERP는 아닙니다.  그래서 전 제가 맡고 있는 수출입 시스템이라는 모듈과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 내에서 제 입지는 Third Party와 동격입니다.

  전 처음 구미 연구소에서 웹 개발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으나, 저로서는 이 분야에 대한 비전을 찾을 수 없었고, 고인 웅덩이 처럼 제가 더 굳어 지기 전에 새로운 곳,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엔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친구 같은 직장 동료와 형같은 직장 선배를 뒤로 한 채 회사에 건의 하여 서울에 있는 ERP 부서로 발령을 요청하게 되었고, 때 마침 수출입 시스템 담당자가 퇴직을 하는 바람에 인수인계도 받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삽질을 해 가며 2년 반만에 이제 거의 완전히 저의 모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수 많은 일 중에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인 것 뿐입니다.

내가 하고 할 수 있는 것

  ERP에는 크게 3부분의 타워(Tower)로 나뉘어 지고 이 각 타워 아래에는 모듈(Module)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말해 타워는 팀이고 모듈은 맡은 업무가 됩니다.
  타워는 물류, 생산, 회계로 구분되어 지는데, 물류는 OM(판매관리), PO(구매관리), 수출입 모듈로 구성되어 있고 생산은 SCM, PICS, WIP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계는 AP/AR(매입/매출), GL/FA(총계정원장/고정자산), COST(원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OM으로 부터 판매된 Data를 가지고 수출입 모듈에서 각종 서류를 만들고 통관 작업을 거치고 매출 채권을 생성한 다음 AR로 넘기고, PO로 부터 요청된 발주서를 이용해 각종 서류를 만들고 수입 작업을 거친 다음 AP로 매입 채무를 Interface합니다.

 그래서 이 수출입은 각 모듈간을 이어주는 중간 모듈로써 ERP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이는 각 업체에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직을 할 경우 현재 사용중인 이 수출입 프로세스가 타 회사에서 그대로 적용되어 있을 확률이 낮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맡게 된 것인지로 모릅니다. 한 마디로 계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업무 성격 덕분에 OM, PO, AP, AR과 같은 타 모듈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이와 연관된 다른 업무를 하게 될 경우 좀 더 이해가 빠를 수 있어서 접근이 용이하다는 잇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수출입, OM, PO, AP, AR, 그리고 ERP의 모든 모듈 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산 이외의 다른 일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저도 이 수출입은 맡게 된지 2년 반이 넘어 내년 3월이면 3년이 됩니다.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일부분은 제외하면 어떠한 업무 요청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95%는 이미 한 두번은 처리했던 일이라서 1시간 이내에 처리가 가능합니다.

  AP/AR. 사실 전 이 모듈에 탐을 내고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이 담당자의 이직으로 그 모듈이 또 다른 담당자에게 인수인계되고 있습니다. 전 그 담당자가 저 이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는 7년간 이 회사에서 그리고 2년 반 동안 ERP업무를 한 제가 아닌, 입사한지 1년이 조금 넘은 한 직원에게 이관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으며 제게 돌아온 것은 그 직원이 비우게 될 업무 인수를 제의였습니다.

  이 회사에서의 제 선택은 두 가지 입니다. 기존의 익숙한 보조적인 수출입 모듈을 계속하거나 원한것은 아니었지만 새롭고 정식 모듈인 GL/FA를 하거나. 눈 딱 감고 GL/FA를 하느냐 기존의 업무를 계속하면 타 모듈로 업무 영역을 확장해 가거나.
  여전히 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또 다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이 회사가 아닌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라고 한다면 이처럼 4지 선다형의 기회 뿐일까요.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기억하는 많은 조언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비록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취하되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네가 할 수 있다면 그 일에 만족을 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길게 보라는 뜻입니다. 샐러리맨들이 회사의 녹을 동안에 필요한 가장 최고의 덕목이나 처세술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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